다가치학교에 있으면, 꾸리들과 지극히 평범하고도 특별한 일상을 함께 나누게 된다.
아마 서로의 감정 상태, 고민, 관심사를 매일 같이 확인하고 이야기를 건넬 수 있기 때문일 테다. 마냥 떠들고 노는 것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틈’ 그러니까 여가시간의 어떤 순간을 ‘프로젝트 활동’으로 견인하는 민첩함이 필요하기도 하다.
운영 1년차를 지나고, 누가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이 완료된 2년차의 프로젝트 기획워크숍을 앞두고 다가치학교에서의 ‘일상’이 ‘활동’으로 연결되는 (글쓴이 기준)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있었다.
한참 꾸리들과 이야기하다 까치 둘이 사무실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 나가보았더니 이게 웬걸, 애기 까치가 1층 공간 안쪽 창문 방충망에 걸려 있다...? 애기 까치를 구하러 부모 까치가 유리문 바깥에서 소리치고 있던 것이다.. 봄이 오면 큰 문을 열어 놓고 생활하고, 애기 까치가 멋모르고 총총 들어왔다 길을 잃고 냅다 점프든 날든 시도하다 방충망에 발이 걸렸을 테고, 부모 까치는 비상 상황임을 인지했던 모양이다.
우린 한 마음 한 뜻으로 애기 까치가 최대한 놀라지 않게 천으로 감싸 바깥으로 잘 내보내주었다. 어디로 날아가나 지켜보다, 다가치학교 바로 앞 큰 이팝나무에 자리를 튼 두 개의 까치 둥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린 새도, 애기 새도, 둥지도, 하늘도, 다가치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구나, 하며 몇 가지 생각을 이어갔다.
아직 날지 못하는 애기 까치는 뒤뚱뒤뚱 걸으며 학교 앞 인도와 차도를 누볐다.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 '아, 이 친구 둥지에서 이제 처음 나왔거나 떨어졌구나, 나는 연습을 하고 있구나!‘ 저절로 깨달은 건 아니고, 머리를 맞대고 제법 진지하게 추론한 결과였다.
'저 부모는 왜 이 이를 바로 옆에서 케어하지 않는가'
‘아 이것이 자연의 교육법인가(?)’
'이 이는 과연 날 수 있을 것인가'
'저 이에게 밥을 주는 게 맞는가‘
’이들은 왜 위험한 차도 쪽에 둥지를 틀었을까‘
’여기에 집을 지을 수밖에 없던 건, 우리가 그만큼 이들의 삶을 침범하고 있어서 아닌가‘
애기 까치가 걸음마를 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이곳 저곳을 누비는 동안 부모 까치는 저공비행하며 사람들의 머리를 연신 쪼아댄단 사실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그저 성격 파탄난 까치들의 공격성에 어이없어 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우린 급한대로 조를 나눴다.
1.
아기 까치가 어딘가 멀리 사라져버리지 않게 동태를 살피며 적당히 삶은 계란과 물로 안전한 곳에 있도록 유인하는 역할
2.
현재 상황을 이 거리 사람들에게 알릴 쪽지를 차분하게 적어줄 사람
3.
2번의 쪽지를 젭싸게 가로등과 인도와 주차된 차에 붙이고 올 역할(쏟아지는 화살과 총알 사이로 숨죽이고 적군 기지에 다녀오는 것과 비슷한 긴장감과 막중한 책임감으로 가장 무게가 있는 역할이었다)
4.
3번 역할을 할 사람들의 머리에 맞는 헬맷을 대체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오는 역할
5.
3번을 엄호할 동료 역할
6.
부모 까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들이 몇 시 몇 분 방향에서 어떤 고도로 날아오는지 중계하는 역할
7.
이 모든 상황을 응원하는 역할
일사천리였다. 플라스틱은 보호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스테인리스 보울 헬맷을 쓰고 애기 까치의 존재도 알리고 조심하라는 메시지도 남기는 데에 성공했다. 까치가 이렇게 가까이 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서있던 길 위의 사람들이 쪽지를 읽고 ‘아~’ 하고 이해하거나 재밌다며 웃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마음속에 엄청난 불꽃이 일었던 것 같다.
여러 염려와 힘찬 응원으로(?) 다행히! 다음 날 아침 보니 하루만에 애기 까치는 나는 법을 터득해 이팝나무 꼭대기에 앉아 균형을 잡으며 열심히 작은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방과중엔 문자로 까치의 사진을 주고받고, 방과후엔 다가치에 오가는 모두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알리며 기쁨을 나누었다.
짧았던 이틀 간에 우리는 알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 누군가의 시선과 관심을 통해 새롭게 보게 되고, 눈앞의 광경이 왜 벌어졌을지 토론하며 새로운 감각으로 공존을 상상하고 실천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주 작은 이야기이자 일상이라도, 함께 마주하면 작은 시도로 이어지고, 용기를 내는 경험이 된다는 것도 말이다.
누군가 평소와 다른 새소리에 집중했고, 누군가는 왜 까치가 싸울까 궁금해 했고,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누군가는 새를 구조했고,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까치 가족의 분투를 알리며 조심할 수 있도록 했고, 누군가는 이 모든 모습을 보며 사진으로 기록했고, 평소 길고양이를 돌보며 동물들에 대해 박식한 누군가는 먹이를 만들었고, 우리 모두 흐트러진 생태계를 걱정도 하면서도 까치 가족을 응원하며 잠들었을 거다.
이 멤버들과 결국 3주간의 프로젝트 기획워크숍을 통해 ‘동물생명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길고양이만 좋아하는 줄만 알았던 꾸리들과 한 팀이 되어 애기 까치를 구출해보며 첫 활동은 ‘새’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야생동물인 ‘새’를 탐조하는 것으로 시작해 인간에 의해 얼마나 많은 부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명을 다하는지 알아보고, 대중 강의를 만들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길고양이로부터 사냥당하는 새와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에는 어떤 대립된 의견과 갈등이 존재하는지 공부도 했다. 코디네이터로서 동물권아카데미 수강생이 되어 그곳에서 배운 것들을 주말마다 나누며 나 또한 너무도‘진심’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스토리가 가득 채워졌다. 눈이 반짝이던 순간을 공공의 프로젝트 활동으로 함께 만들어냈다.
k-여고생의기록 프로젝트가 만든 출판사 이름대로 다가치학교가 정말 ‘까치집’이 되어 의미가 덧붙여졌다. 다가치학교 출판사 ‘까치집’의 뜻은 ‘헝크러진 머리를 빗대기도 하는 까치집은 얼기설기, 얼렁뚱땅 해도 결국 따스한 둥지’로, 내부 구성원들의 공모로 선정되었다.